남미 최대의 감옥 카란디루. 과밀수용으로 폭력과 전염병이 급속도로 번져가던 어느 날 에이즈 치료와 예방교육을 위해 한 의사(드라우지오 바렐라)가 도착한다. 바렐라는 카란디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거친 수감자들의 칼부림을 목격하고 열악한 환경에 몸서리치지만, 수 많은 환자들을 외면하지 못해 그곳에 남기로 한다.

감옥 한 쪽에 마련된 간이 진료실은 ‘이곳에 죄 지은 사람은 없다’는 수감자들의 각양각색 사연들이 오가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자기는 원래 좀도둑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우연한 살인범 에보니, 아내‘들’의 사랑다툼이 방화로 이어져 감옥신세까지 지게 되었다는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하이니스, 이름과는 정반대로 트랜스젠더 레이디 디와 사랑에 빠지고 옥중결혼식까지 올리는 행운의 사나이 투 배드(Too bad)... 바렐라는 다양한 죄수들을 만나 각각의 너무나 인간적인 범죄의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얼핏 보면 온갖 범죄자들이 모인 무법천지, 그러나 나름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움직이던 카란디루의 최대행사인 축구시합이 열리던 날! 축구장 밖에서 일어난 사소한 싸움이 카란디루 전체의 폭동으로 번지게 되고... 경찰기동대의 잔혹한 진압으로 카란디루는 순식간에 끔찍한 피바다를 이룬다. 운 좋게도 비극의 그날 카란디루를 잠시 떠나있었던 바렐라는 살아남은 자들의 생생한 고백을 전해듣는다. 

[ 내 용 ]

1992년 브라질에서 일어났던 최악의 감옥 폭동 사건인 카란디루 폭동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단 한명의 경찰사상자 없이 111명의 수감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경찰이 ‘진압’했다기 보다는 ‘학살’했다고 표현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거미여인의 키스>(1985)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브라질 감독 ‘헥터 바벤코’의 신작 <카란디루>는 남미 최대의 감옥 카란디루에서 벌어졌던 폭동사건을 그린영화다. 교도소 내 축구 경기 중 벌어진 다툼이 폭동으로 발전되어 절정은 경찰의 과잉진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마지막까지 사건의 재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거대한 교도소를 빼곡히 채우는 재소자들의 일상과 그들의 사연이다.
카란디루에 파견된 의사 드라우지오 바렐라는 부임 첫날 수감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에 얼어붙는다. 3500명 정원에 7000명의 죄수를 수용한 카란디루에는 폭력 뿐 아니라 마약과 에이즈가 창궐해 있다. 그러나 에이즈 검사를 위해 찾아온 죄수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바렐라는 폭력과 질병도 와해시키지 못하는 이 곳의 ‘삶’을 발견한다.
수많은 수감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화면 안에 밀도 있게 배치하며 이들의 사연과 일상을 정교하고 빈틈없이 채워 넣는 솜씨는 실제 이상으로 영화를 커보이게 한다. 어둠과 증오만 있을 것 같은 이곳에도 우정과 로맨스가 피어나고, 자치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이 질서에 엄격함보다 남미 특유의 떠들썩함과 낙천성이 묻어나온다. 플래시백으로 흘러나오는 죄수들의 과거는 좀도둑이 우연히 살인자가 되어버린 ‘억울한’ 사연에서 두 아내의 사랑다툼으로 방화범이 된 ‘황당한’ 사연까지 천일야화처럼 다채롭다.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일상으로 감옥 안의 풍경이 지닌 인간의 얼굴이 완성됐을 때 벼락처럼 폭동이 터지고 완성된 그림은 핏물로 흥건하게 얼룩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