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는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제작해 부와 영향력을 갖게 된 할리우드의 제작자이다. 그의 성공에 비해 외로운 부인 페이지는 그런 맥스와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맥스가 두 명의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는데.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폭력과 감시의 문제로 탐구하고 있는 작품.
폭력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포, 그리고 사랑의 부재가 아닐까요?
빔 벤더스는 이렇게 극중인물의 간단한 대화를 통해 폭력을 정의하고 스토리를 진행해 나간다.
주로 액션영화를 찍는 헐리웃의 성공한 영화제작자 마크는 일상이 너무 바쁜 나머지 그의 부인 페이지와 관계가 소원하다. 페이지는 그의 무관심에 염증을 느껴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는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다.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남은 마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들을 둘러보게 된다.
대충 이러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폭력의 종말>은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러나 감각적으로 감지하기 힘든 폭력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물론 그러한 폭력의 존재는 관객들도 일상의 파시즘이니 뭐니 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숙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편하게만 여겨왔던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폭력은 세상에 대해 희망이나 밝은 측면보다 침울하고 어두운 면에 집중하는 빔 벤더스의 영화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관한 부정적인 면은 기계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소통의 부재, 차이 혹은 소통의 감시에서도 나타난다. 그러한 부정적인 면들은 인간의 실존자체를 위협하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발터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의 한 구절 '신화적 폭력은 유혈의 폭력이고, 신적인 폭력은 순수한 폭력이다'을 기억하게 한다. 신적인 순수한 폭력 그것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폭력이다. 그러한 폭력의 상징체계로 빔 벤더스는 '텔레스코프'라는 공간을 만든다. 텔레스코프는 외면적으로는 범죄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초능력자의 영감을 믿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자료를 토대로 범죄를 예방하려 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는 다르게 군사적으로 사용하는 위성사진과 같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한다. 이제 개인은 텔레스코프라는 일망감시체제하에 종속된다.
텔레스코프는 조지오웰의 '1984'와 일맥상통한다. 제레미 벤담의 근대적인 감옥의 이상형인 '판옵티콘'이 범죄자들에 대한 완벽한 감시와 통제를 꿈꾸었다면, 조지 오웰은 이를 범죄자와 일반인을 구별하지 않는 통제체제에 대한 상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빔 벤더스는 이러한 감시체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감시체계가 그 감시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행사하는 물리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폭력성을 기술하고 있다. 모든 개인의 삶을 새롭게 지배하는 이 네트워크권력 아래 영화제작자 마크의 삶의 문제와 앞으로의 미래가 변화한다. 오히려 괴한을 살해한 용의자로 주목되고 있는 그의 미래는 과연 암울하고 전망조차 어두울 것인가. 텔레스코프 그것은 경제 및 문화의 교환이 일반화되는 새로운 시대에 그 교환을 규제하고 매개하는 주권 권력이며 네트워크 권력 기구이다. 이 기구는 대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지배 권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 사랑, 여가, 사생활과 같이 사람들의 삶의 문제조차도 감시한다는 폭력적인 미디어 테크놀로지이다. 사생활의 문제는 결코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감출 것이 없으면 감시당하라는 것은 비약이며 이데올로기이다. 사생활권의 핵심은 '내가 감출 것이 없어도' 나의 정보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어 부귀영화를 한 손에 거머쥔 마크는 이러한 텔레스코프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자신 역시 텔레스코프의 역할을 한다. 마크의 삶에서는 텔레스코프가 작동하는 권력과 폭력이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때 권력은 소유와 양도, 의인화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데이터 베이스화, 객관화, 물질화이라는 의미를 가진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은 물리적인 폭력과 엉키게 된다.
텔레스코프를 만드는 기술자인 남자 는 그 자신이 텔레스코프를 만들어 가면서도 그것의 폭력성을 깨닫는다. 자기 자신조차도, 나아가 많은 자기들로 구성된 자기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박탈당하고 감시와 통제 속으로 종속 시킨다는 것 그것만한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빔 벤더스는 폭력의 종말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언급했다 할지라도 나는 그 기호를 읽지 못했다. 인간의 일상을 위협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관해 비판적인 관점이면서도 그 첨단 기술들이 영화 속에 깊게 침투해 있는데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이 '헐리우드'라는데 대해서 빔 벤더스의 '공간'적인 틀을 읽을 수 있다. 폭력,섹스,그리고 권력이 난무하는 헐리우드영화가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것과 동일한 코드의 무의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권력에서 장소 혹은 공간의 구조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명확하다. 특히 권력의, 폭력의 상징공간으로서의 특정한 장소의 의미는 정치적 위기가 격화되는 순간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 여기 “폭력의 종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폭력은 세 가지 종류이다.
첫째는 문화에서의 폭력, 둘째는 정부로부터의 폭력, 셋째는 일상으로부터의 폭력이다.
- 하나의 종말을 위해,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달림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멈춤은 달리는 자를 달리게 하고, 달림은 달리는 자를 멈추게 한다.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 여전히 <종말>이라는 단어는 믿을 수 없는 단어이다. ‘다시는’ 혹은 ‘절대’처럼.
<폭력의 종말>은 말 그대로 거창한 느낌을 불러오는 제목이다. 어딘가에 종말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일지 모르겠다.
- “ 빔 벤더스”의 <폭력의 종말> 하나의 소멸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오므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상태가 이전에 느끼지 못하던 나를 잠시 돌아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때가 바로 탈출할 시점이다.